[서평] 영화처럼

시네마 천국 속으로

처음으로 가네시로 가즈키의 글을 읽었다. 모두 다섯 개의 이야기들로 구성된 <영화처럼>을 펴는 순간, 그야말로 ‘마하’의 속도로 책에 씌여진 글들을 읽어댔다. 그만큼 <영화처럼>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흡입력이 있었다. 책은 그야말로 ‘영화처럼’ 아름다운 결말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금세기 초에 하나의 새로운 예술 장르로 인정받게 된 영화는 그 소재 선택에 있어서,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해 왔다. 어쩌면 그런 면에 있어서 문학과 필연적으로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 않았을까. <영화처럼>에 나오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영화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나”는 소설가로 첫 발표한 소설이 영화화되는 찰나에 어린 시절 같은 학교에 다녔던 용일과의 추억 속으로 빠져 든다. 재일 조선인이라는 마이너리티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나는, 민족학교에 다니면서 용일과 영화를 통해 친구가 된다. 일본 드라마나 소설에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자전거를 타고, 당대 최고의 쿵푸 영웅이었던 이소룡을 숭배하며, 알랭 들롱이 나오는 <태양은 가득히>의 결말을 비판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던 우리들은 모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다들 아버지가 없어야 한다는데 의기투합을 하게 된다.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면서 어릴 적 친구였던 용일과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그에 대한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결국 평범한 생활을 하던 나는 직장을 그만 두고 글쓰기에 도전하게 되고, 신예작가로 등단한다. 용일 어둠의 생활을 청산하고, 오키나와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정무문>에서는 제약회사에 다니다가 자살한 남편의 죽음에서 빠져 나오는 미망인 고모토와 비디오 대여점 힐츠의 알바생 나루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여주인공 고모토가 남편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또 영화였다. 다음의 <프랭키와 자니>에서는 두 명의 고등학생이 등장하는데 나와 이시오카가 그 주인공이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이시오카는 아버지의 의뢰인이 맡긴 보석금 3000만엔을 강탈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싱글 맘과 같이 사는 나 역시 이 계획에 공범으로 가담하게 된다.

네 번째 이야기인 <페일 라이더>에서는 좀 언밸런스한 커플이 등장하게 되는데 부모가 이혼 위기에 처한 초등학생 유와 어디선가 갑자기 등장한 아줌마 라이더 나미가 그들이다. 동급생들의 위협으로부터 유를 구해준 나미 아줌마는 씩씩한 바이커로 유와 더불어 구민회관에서 <로마의 휴일>을 보고 라이드를 즐긴다. 예상치 못했던 이 에피소드의 결말은 통쾌했다.

도리고에 패밀리가 등장하는 마지막 이야기 <사랑의 샘>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화룡점정식 대미를 멋지게 장식해준다. 할아버지를 여의고 실의에 빠진 할머니를 위해 5명의 손자 손녀들의 좌충우돌 영화 상영 계획은 책을 읽는 이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준다. 게다가 화자인 나 데쓰야의 로맨스도 부록으로 들어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 나오는 작가의 짖궂은 데쓰야에 대한 강아지 비유는 정말 압권이었다. 마음에 드는 쓰카사는 데쓰야를 자신이 어려서 기르던 알래스카 맬러뮤트 닮았다고 하질 않나, 하마이시 교수는 영리하게 생겼지만 자신의 똥을 먹었던 시베리아 허스키를 닮았단다.

기성세대들의 눈에는 여전히 새로운 세대들이 우려가 되지만, 데쓰야-가오루로 대변되는 뉴 제너레이션들은 우리들은 전혀 문제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로마의 휴일>은 세대를 떠나 공감할 수 있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다. 정말 좋은 영화라면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작가는 조용히 속삭인다.

8월 31일 일요일 <로마의 휴일>이 주는 의미는 매우 상징적이다. 한 계절이(갈등이) 끝나고, 새로운 계절을(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화해?) 맞이하게 되는 시점이 그렇고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해서 다섯 개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이들이 알게 모르게 그렇게 맺어져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다시 한 번 마치 들줄과 씨줄이 얽힌 듯한 멋들어진 구조를 만들어내는 가네시로 가즈키에게 찬사를. 아주 오래전에 본 <시네마 천국>으로의 두 번째 티켓을 받아쥔 기분이었다.

<영화처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오는 상대방을 받아들일 정신적 여유가 없다. 그리고 곧 후회하는 모습들이 현대인들의 우유부단함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에피소드들의 나열은 마치 소설의 전개방식인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순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씩 크레센도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결말은 아주 흡족하다. 그렇게 모두에게 행복이 나뉘어진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이, 그렇게 ‘영화처럼’ 말이다.

 

by 레삭매냐 | 2008/10/30 13:58 | 책책책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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